Keb' Mo' (켑모)는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1951년에 출생한 블루스 뮤지션으로 3번이나 그래미상을 수상한바 있으며
싱어, 기타리스트, 송라이터,이다. 요즘은 네쉬빌에서 살며, 그는 광활한 미국을 가로질러 미시시피 강을 건너 델타 블르스(Delta blues)와
연결되는 여행의 삶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포스트 모던 블루스 스타일은 포크와 록, 재즈, 팝의 장르에 영향을 끼쳤으며
그를 "street talk" 라고 칭하기도 한다.
일본의 이케다 SGI회장은 [인간의 심정을 말해 주는 것으로는 음악만큼 정직한 것도 없을 것이다. 거짓말을 하려 해도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언어도 필요하지 않다. 논리를 따질 필요도 없다.]며 음악은 평화를 만드는 효과적인 수단이라 강조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의 역사를 살펴보며 그 속에 어떠한 인간의 혼이 담겨 있는지 오늘은 블루스에 관해 알아보겠다.
블루스, 자유를 부르짖다.
비 오는 창가, 푸른 조명, 따뜻한 커피, 주위를 휘감고 도는 조금은 음울한 음악. 이 장면에서 떠오르는 음악이 있는가.
당신이 지금 떠올리는 음악은 아마도 [블루스]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런 낭만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삶의 설움이 녹아있는 음악이 바로 블루스다.
소울(Soul)과 R&B(Rhythm and Blues), 록(Rock)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면서 대중음악 역사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한 블루스에 대해 알아보겠다.
절망과 슬픔을 허공으로 던지다
블루스(Blues)는 우울하다는 의미의 [Blue]에서 나온 말로 노예로 살아가는 흑인들이 일상에서 느낀 비애를 표현한 우울한 음악이다.
대서양 건너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머나먼 아메리카로 끌고 와 인간이하의 취급을 하며 노동력을 착취한 백인들.
그들의 횡포에 흑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자신들의 삶을 철저히 파괴당했다. 그러한 슬픔 위에 블루스는 태어났다.
초기에 미국으로 끌려온 흑인노예들은 고통을 잊기 위해 고향에서 부르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길 원했으나 백인들은 그것마저 제지했다.
그러한 집단행동이 그들을 하나로 모으고 불만을 표출시킬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두드리던 드럼연주마저 금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흑인들은 주로 보컬과 현악기 위주의 곡을 연주하게 되는데 그것은 초기 블루스인 컨추리 블루스(Country Blues)로 자리 잡는다.
삶의 애환을 넋두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
블루스는 괴로움과 어려운 삶을 잠시 잊기 위한 즉흥적인 표현이었기에 가사는 직접적이고 선정적이며 솔직했다.
주제 또한, 실직과 새로운 일터에 대한 추구와 도박, 사소한 범죄, 음주와 알코올 중독과 같은 우울한 시대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노예로서의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생활과 백인들에게 유린당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소극적으로나마 표출하려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대도시의 활기를 머금은 블루스, 대중음악으로 자리 잡다
1차 세계대전(1914∼1918)의 혼란 속에서 남부의 흑인들은 대거 북부도시로 이동했다.
이러한 대이동에 따라 블루스도 변화한다. 대도시의 긴장과 혼란 등의 복잡한 정서가 가미된 도시 블루스(City Blues) 혹은,
시카고 블루스가 탄생하게 된다. 시카고 블루스는 피아노와 전기기타, 앰프 등의 악기로 연주되면서 한층 밝은 기운을 담게 된다.
이제 더는 블루스는 흑인만의 음악이 아닌 대중음악의 주류에 속하게 된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시카고 블루스는 전보다 더 빠르고 경쾌한 리듬이 강화되어 그에 맞춰 춤도 출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후에 리듬 앤 블루스(Rhythm and Blues)로 발전한다.
소울(Soul)과 R&B, 록(Rock)의 교과서
블루스는 다른 음악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블루스와 재즈는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젤리 롤 모턴(Jelly Roll Morton), 루이 암스트롱(Louis Daniel Armstrong) 등의 재즈 음악가들은 블루스의 요소들을
그들의 음악에 접목시켰다. 그 예로 블루스 음악에 전기의 증폭된 음향이 도입되면서 흥겨운 리듬 비트가 가미된 리듬 앤 블루스는
블루스의 슬픈 멜로디에 재즈의 4박 리듬이 가미된 일종의 댄스뮤직으로 블루스가 재즈와 접목된 획기적인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블루스의 저항의 정신을 담아 탄생한 록 음악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Aron Presley),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 등 많은 록 음악가들이 블루스의 영향을 받았다.
아래로부터의 음악 혁명
비주류였던 흑인 음악 블루스가 현대 대중음악의 뿌리로서 자리한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것은 블루스에 담긴 억압받은 이의 애환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도는 다를지라도 대다수의 인간은 무언가에 속박당하는 느낌을 갖는다.
흑인들은 암담한 현실 속에서 아픔과 분노 등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했다.
꾸밈없이 삶 그 자체를 노래했기에 많은 이들이 그 매력에 빠지지 않았나싶다.
불운의 블루스 여왕 베시 스미스 (Bessie Smith, 1892. 7 ~ 1937. 9)
폭발적인 감정과 소박한 표현법, 완벽한 리듬감각을 지녀 블루스의 여왕으로 불린 여성이 있다. 블루스 보컬리스트 베시 스미스다.
1894년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블루스의 어머니라 불리는 스승 마 레이니(Ma Rainey)의 후원으로 직업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수년간 남부 곳곳을 다니며 실력을 쌓1923년 첫 음반을 낸다. 음반 [다운 하티드 블루스(Down Hearted Blues)]는 200만 장의 판매
기록을 세우며 음악사상 첫 히트곡을 낳기도 한다.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며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그녀는 음악을 통해 미국의 전 흑인들의 좌절과 희망을 표현했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삶을 살았던 그녀 역시 흑인 인종차별의 그림자를 피하지 못했다.
1937년, 지방 순회공연 중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는데, 최고 인기를 누리던 가수인지라 사람들에게 얼굴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흑인이었기에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도로에서 서서히 죽어가야만 했다.
백인 구조원들은 환자가 흑인임을 확인하는 순간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뛰어난 재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끝내 인종차별로 불행하게 세상을 등진 베시 스미스의 죽음은 그녀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대부분의 흑인이 당한 차별적 대우를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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