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샹송중에서도 고전 이라 할수 있는 Georges Moustaki(조르주 무스타키)의 Le Meteque (이방인), Ma Solitude (나의고독)
Le Temps de Vivre (살아있는 시간)등 3곡을 올리며 즐감 하시기를...
Georges Moustaki(조르주 무스타키) 와 Le Meteque (이방인)
가사
당신의 입은 이방인의 입. 유랑하는 유태인이나 그리스의 목자와 같네. 사방에서 부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푸른 눈은 아주 드물게 꿈을 꾸는 당신에게 꿈꾸는 듯한 인상을 준다네.
당신의 손은 방랑자의 손. 많은 정원을 휩쓸고 다닌 방황하는 음악가의 손. 마시고, 키스하고,
갉아먹어 온 당신의 입술은 언제나 굶주리고 있어서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네. 당신의 입은 이방
인의 입. 유랑하는 유태인이나 그리스의 목자와 같네. 도둑, 또는 부랑자와 같네. 당신
조르주 무스타키가 1967년에 작사 · 작곡한 노래로서, 피아 콜롬보(Pia Colombo)가 초연하여
히트시켰으며, 무스타키의 출세작으로 꼽히고 있다. 무스타키의 본명은 조제프 무스타키이며,
1934년 5월 3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그리스인이다. 이 도시에서 부친이 큰 프랑
스 서적 책방을 경영하고 있어서, 그는 손님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알지 못하는 사이에 교
양을 몸에 익혔다. 15세 경부터 음악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여 기타를 마스터했고, 술집 등에서
는 흥이 솟는 대로 피아노나 드럼을 두드리기도 했다. 그 무렵은 상당히 화려하게 지낸 것 같다
.
13세 때, 보이스카웃 캠핑을 통해 처음으로 프랑스에 갔다. 두 번째 프랑스 여행을 한 것은 17
세 때 바칼로레아(대학 입학 자격 시험)의 제1차 시험에 합격하고, 그 상으로 1주일간 파리 방
문에 초대됐을 때이다. 그의 누나가 프랑스의 시인 겸 책방을 하는 장 피에르 로즈네와 결혼하
여 파리에 살고 있었으므로, 그 집에서 신세를 졌다. 이 체험이 파리의 동경을 북돋아 주었다.
이집트에 돌아가고 나서 2주일 후 아버지에게 희망을 털어놓고(부친은 아들을 건축가로 만들 작
정이었는데) 열심히 설득하여 허락을 받고 파리의 자형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우연히 가수를 지망하는 이집트인과 알게 되어 기타로 반주를 해 주었다. 언젠가 즉흥으로 치던
멜로디에 친구가 가사를 붙여준 일이 있다. ‘길에 동료들이 있다······.’는 첫 마디의
가사 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이 곡이 무스타키가 작곡한 최초의 샹송이 되는 셈인데
, 1952년의 일이 었다. 이후, 그는 샹송을 만드는데 열중했다. 하지만 자형과 사이가 좋지 못해
집을 뛰쳐나가 방황하고 있던 중, 카바레 ‘트로와 보데’에서 조르주 브라상스의 노래를 듣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기자 생활을 하는 친구의 소개로 브라상스와 만날 수 있었던 무스타키는
친구 덕분에 자크 카네티 · 프랑시스 클로드 · 미셀 아르노와도 만날 수 있었다.
어느 날 프랑시스 클로드가 경영하는 ‘미롤 랄수유’를 찾아간 무스타키는 레미 클라리 (현재
의 이름은 자크 드와이앙)라는 신인 가수의 노래를 들었다. 이틀 후 우연히 버스 안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곧 의기 투합했다. 클라리는 무스타키가 작곡한 노래 (당시는 아직 작사는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를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불렀는데, 바로 <가는 파리> · <꿈을 돌봐라> ·
<술집 오대주(五大洲)> 등이며, 1953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생활은 어려워 무스타키는 싸구려 호텔을 전전하면서 바텐더로 일하기도 했고, 이집트
신문의 편집원을 지내기도 했다. 1955년, 만 20세 때에 결혼하였으나, 이것마저 실패했다. 소시
민적인 생활에 견디지 못하고, 타고난 방랑벽을 발휘하여 바스차니니라는 작가 친구를 따라 훌
쩍 벨기에의 브뤼셀에 간 끝에, 돌아올 여비도 없어 기타를 안고 술집을 돌아 겨우 한 군데의
가게와 계약을 할 수가 있었는데, 여기서 가수 무스타키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윽고 여성 가수 이렌 르카르도가 처음으로 그의 작품을 78회전의 레코드에 취입했다. 1957년
에는 기타리스트인 앙리 크롤라(<C’est Si Bon>의 작곡자)와 알게 되어 그의 소개로 에디트
피아프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에덴 블루스> · <미롤>과 같은 작품이 피아프에 의해 초
연되면서 겨우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1960년에는 무스타키 자신도 레코드를 취입했으나, 당시는 ‘예 예’(록 풍의 노래)가 전성이어
서 소박한 그의 노래는 그리 평판을 얻지 못했다. 이리하여 긴 불우한 시절 뒤에 1967년 <Le
Meteque>를 피아 롤롬보가 대중 앞에서 부르면서 자작 자창도 대히트하여 2년간에 걸쳐 히트
차트를 장식했다. 다시 70년 1월에는 보비노 극장에서 노래를 불러 대성공을 거두었고 명성도
얻었다. 이후, 브라질 음악을 도입하기도 하고, 아르헨티나의 밴드 주자 아스톨 피아솔라와 공
연하기도 하면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며 전진을 계속하고 있다. 1974년을 시초로 가끔 동양
공연도 가졌다. 출세작 <이방인>의 원제 ‘르메테크’는 속어로 ‘거류민’을 말한다.
초연자 피아 콜롬보, 작곡자 조르주 무스타키 외에 그리스의 여배우 가수 메리나 메르쿨리의 음
반도 좋다.
출처 : 이야기 팝송 여행 & 이야기 샹송칸초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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