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Grieg(그리그) - Danse Norvegienne(노르웨이언 댄스)

black silk 2011. 10. 2. 06:00

 

 

 

 

Grieg(그리그) - Danse Norvegienne(노르웨이언 댄스)

 

 

그리그 (Edvard Hagerup Grieg)

 

노르웨이 국민주의 음악의 대가 그리그(Edvard Hagerup Grieg, 1843~1907)는 1843년 노르웨이의 항구도시 베르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북해로 새우잡이를 왔다가 노르웨이에 정착한 스코틀랜드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노르웨이 여성이었다. 그리그가 태어났을 당시 노르웨이는 1536년에 덴마크에 병합되어 약 300여 년간의 지배를 받았고 1814년부터는 나폴레옹의 군대를 격파한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다. 노르웨이가 독립국이 된 것은 1905년의 일이었다고 하니 그리그가 태어난 1843년은 노르웨이가 스웨덴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였다. 
 

그리그는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같은 베르겐 출신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올레 불의 인정을 받아, 그의 권유로 15세때(1858년) 독일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유학한다. 이 시절 클라라 슈만이 연주하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도 들었고 바그너의 [탄호이저]도 여러 번 보았다 전해진다. 귀국 후 21세 때, 같은 노르웨이 출신의 젊은 작곡가였던 노르드라크와 깊은 우정을 맺었다. 이듬해 코펜하겐으로 옮긴 그리그는 덴마크 음악계의 대가인 닐스 가데와 교류했다.

 

그리그는 1865년에 로마를 여행했고, 1870년에 리스트의 초대로 재차 로마를 방문하게 된다. 이때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1868)을 연주한 리스트는 그리그를 극찬했다고 한다. 노르웨이로 돌아온 그리그는 오슬로 음악원 부원장, 필하모니아 협회의 지휘자 등을 겸하면서 작곡에 몰두했다.

 

1867년에 오슬로 음악 협회를 조직하여 7년간 지휘자로 활약했고, 1874년 31세 때부터 고향인 베르겐이나 오슬로에서 주로 생활하면서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국가의 종신 연금을 얻어 작곡에 전념했다. 그리그가 [페르귄트]를 작곡한 것은 이 시절이었다. [글 : 카페 : 늘 사랑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