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갑자기 이 노래가 생각이 나서요.
아버지께서는 정말 다양한 노래들을 들으셨는데, 옛 추억이 생각나셨던지, 이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1938년에 발매된 노래네요. 일제 시대 때 노래인지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조금은 코믹스러운데, 계속 멜로디가 생각이 납니다.
중독성있는 가사와 멜로디라 저도 따라 흥얼거렸던 기억이 나요.
그나저나 이 블로그 운영자의 취향은 참 알수가 없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지해서 그렇습니다. 아는게 힘이라고 하는데, 아버지에 비해 턱없이 아는게 없습니다.
그래도 생각나는 곡들을 올려보려고 합니다.
날씨가 이제 선선합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가을이 오고, 금방 겨울이 오겠네요.
다들 감기 조심하시고, 즐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박향림 - 오빠는 풍각쟁이
박향림
1921년 함경북도 경성군 주을읍 온천동 출신으로 1937년 서울로 상경해 태평레코드에서 데뷔하였다. 17살의 나이인 1938년에 오빠는 풍각쟁이를 발표해 유명해졌다. 사후 78년이 지난 지금도 좋게 평가받고 있는 건 박향림의 가창력. 현대의 가수들과 비교해도 박향림의 가창력은 최상급으로 평가받으며 당시에는 체계적인 보컬 트레이닝도 없었다는 걸 생각하면 대단한 부분이다. 지금도 그녀의 대표곡인 오빠는 풍각쟁이를 내로라하는 가수들과 가창력에 자신 있다는 일반인들이 불렀지만, 그 오묘한 콧소리와 노래의 독특한 오르내림을 모두 살린 사람은 없다.
반면 친일 행적으로 의심되는 부분이 있는데 1942년 남인수, 백년설과 함께 혈서지원을 불렀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이 자발적인 것인지 강압에 의한 것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혈서지원은 같이 부른 둘은 2008년에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 명단의 음악 부문에 선정되었지만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유일하게 박향림의 이름은 거론하지 않았기에 본인은 여기에 해당이 되진 않은 상태.
광복 직후 출산하였고,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공연을 나섰다가 산욕열이 발발하여 해방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46년에 사망했다.
오빠는 풍각쟁이
가수 박향림이 1938년 콜럼비아 레코드를 통해 취입한 노래로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만요(漫謠)작사가는 박영호, 작곡은 김송규.
가사는 1920년대 중반에서 1930년대 초반, 일제강점기 조선의 경성부나 평양시과 같은 대도시 중류층의 생활상을 담고 있다. 현대에 들어 이 곡을 각색하거나 그대로 부를 경우, 원곡을 부른 박향림의 독특한 창법과 레코드 특유의 음을 재현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이 곡을 불러본 경험이 있는 가수의 말에 의하면, 음의 오르내림과 콧소리를 모두 살리기가 쉽지 않다고. 콧소리에 치중하면 음이 평탄해지고 음의 기교를 살리면 콧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는 것. 또한 브라스 밴드의 사운드가 생각보다 수준급이다.
박향림은 후에 백년설, 남인수와 함께 대표적인 전시 친일가요인 《혈서지원》을 부른 적이 있었다. 다만 이것이 자발적인 것인지 강압에 의한 것인지 여러 시각으로 갈라지고 있다. 박향림은 광복 이듬해인 25세 나이에 요절했다.
[참조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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