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Rostropovich - Bach 무반주 첼로 모음곡 1악장

black silk 2025. 2. 17. 15:33

안녕하세요.
블로그를 너무 오랜만에 들어왔습니다.
반성합니다.
일이 바쁘다고는 하지만,,,참 너무했네요.
강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도 봄은 오나 봅니다.
마당에 매화 꽃 봉우리가 제법 통통해졌습니다.
금방 꽃이 피고 봄이 오겠지요.
오늘 업로드 곡은 로스트로포비치님이 연주하신 무반주 첼로 모음곡 1악장입니다.
아버지께서 블로그 서두에 음악에서 위로를 얻을 때 있습니다. 같이 듣고 좋은 시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적어놓으셨는데, 저도 음악에서 위로를 많이 얻습니다.
음악의 힘은 위대하지요.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진정되지 않을 때, 이 음악은 마음을 차분하게 고요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바하의 음악이 그런 것 같습니다. 첼로의 음색이 그러하구요.
중학교 시절에 CD를 사주셨는데, CD는 찾을 수가 없네요.
다들 즐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Rostropovich - Bach Cello Suite No.1 BWV 1007


 

 

Mstislav Rostropovich, (1927년 3월 27일 ~ 2007년 4월 27일)

 

소련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태어난 러시아인 첼로 연주자이자 지휘자이다. 뛰어난 기교 및 해석능력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새로운 곡들을 소화하는 면모를 보여, 20세기 가장 뛰어난 첼로 연주자로 손꼽힌다. 특히 안토닌 드보르자크과 요제프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에 대한 해석이 유명하다. "슬라바"(Slava)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소련 아제르바이잔 SSR 바쿠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모스크바 동쪽 10시간 거리의 오렌부르크로 옮겨 거주하다가 1943년 모스크바에 정착했다. 이후 1970년대에 정치적 이유로 시베리아에 유배되었다가 1974년 미국으로 망명했고, 1978년 소련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1987년 영국 명예 KBE훈장(외국인대상 명예훈장)을 받았으며, 1990년 소련 국적을 회복하고 1995년 폴라음악상을 수상하였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와의 2중주, 예밀 길렐스와 레오니드 코간의 3중주의 연주가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레퍼토리는 매우 넓으며, 많은 작곡가가 그에게 작품을 헌정하였다. 고금의 첼로 명곡의 세부까지 치밀하게 연마된 정력적인 연주로 절찬을 받았다. 피아니스트로서도 준수한 평가를 받았다.

 

Johann Sebastian Bach, (1685년 3월 31일(그레고리력) ~ 1750년 7월 28일)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 쳄발로 연주자이며, 개신교회의 교회 음악가이다.
 교회 성기사와 오케스트라, 듀오 악기를 위한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음악을 창작했고, 그의 작품은 바로크 시대의 종말과 궁극적인 성숙을 동시에 가져왔다. 그는 바로크 시대의 최후에 위치하는 대가로서, 일반적인 작품은 독일음악의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위에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양식을 채택하고 그것들을 융합하여 독자적 개성적인 음악을 창조하였다. 종교적 작품은 기존 구교 음악과 차별화하여 새로운 음악을 통해 개신교회 예배에 기여하고자 노력하였다.
 바흐의 집안은 200년에 걸쳐서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한 일대 음악가계였다. 바흐 집안의 음악가들은 대대로 개신교회인 루터교회의 경건한 신자들이었고, 교회음악가로도 활동하였다. 또한 그들의 일에 강한 장인(匠人)적인 긍지를 품고 있었다. 이 '신앙'과 '장인기질(匠人氣質)'은 요한 제바스티안에게도 계승되어서, 마치 2개의 정선율(定旋律)과 같이 그의 일생을 관통하게 된다. 제바스티안 이전에도 17세기 초엽 이래 많은 유명한 작곡가를 배출했고, 일족의 중심지이었던 중부독일의 튀링겐 지방에서는 '바흐'가 '거리의 악사'를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을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제바스티안의 큰할아버지 하인리히 바흐(1615-1692), 그 아들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1642-1703)와 요한 미하엘 바흐(1648-94)는 음악사(史)에도 이름을 남긴 뛰어난 작곡가들이었다.
 바흐는 사후 고전주의 음악사의 흐름에 밀려 완전히 잊혔으나 1802년 독일의 음악사학자인 포르켈이 바흐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인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Über Johann Sebastian Bachs Leben, Kunst und Kunstwerke)을 1802년에 발표함으로써 전 유럽적 바흐 광풍을 몰고 오게 하였으며, 사후 바흐에 대한 재평가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였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온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아주 훌륭한 곡을 많이 작곡하였다.

 

여섯개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역사상 무반주 첼로 솔로를 위해 쓰인 최고의 작품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곡들은 바흐가 쾨텐에서 카펠마이스터로 활동했을 때인 1717년부터 1723년 사이에 쓰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모음곡들은 다양한 기술적 요소, 풍부한 감정적 표현, 그리고 바흐의 호소력 짙은 음색을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음곡들을 오늘날 가장 널리 알려진 바흐의 작품으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친근함'이 아닌가 싶은데, 이는 각각의 스타일을 열렬하게 추종하는 애호가들이 원하는 만큼 다양한 음악적 해석을 바탕으로 녹음한 곡들이 많다는 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원래 이 모음곡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다리 사이에 놓고 연주하는 다 감바 스타일의 첼로가 아닌 바이올린처럼 어깨에 얹고 연주하는 다 스팔라 악기를 위해 작곡되었다고 한다. Sigiswald Kuijken과 Ryo Terakado는 오늘날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로 알려진 이 악기로 연주한 첼로 모음곡 음반을 발표했는데 이 악기들은 악기 제작자 Dmitri Badiarov에 의해 복원되었다. 그 당시의 악기들을 일컫는 용어의 범람은 오늘날 큰 혼란을 유발했으며, 이 덕분에 "바흐가 의도했던" 악기가 무엇인지에 관한 토론은 현재진행형이다.

첼로 모음곡들은 각각 여섯 개의 악장이 다음과 같은 구조와 순서로 배열된 형식이다.
1. 프렐류드(Prelude)
2. 알르망드(Allemande)
3. 쿠랑트(Courante)
4. 사라반드(Sarabande)
5. 갤런트(Galanteries)
6. 지그(Gigue)
 연구자들은 바흐가 이 모음곡들이 단순한 악장들의 임의적 배열이라기 보다는 유기적으로 구성된 사이클로 받아들여지기를 의도했다고 생각한다. 바흐의 다른 모음곡들과 비교해보면, 첼로 모음곡들은 악장들의 순서가 일관성을 가지고 배열되어 있다. 게다가, 전통적 형식을 탈피해서 대칭적인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바흐는 인터메조나 갤런트 악장들을 사라반드와 지그 사이의 짝을 지어 넣어놨다.
 한 가지 주목해야할 점은 전체 모음곡집 중에서 단지 다섯 개의 악장만이 완전히 비화성적인데, 이는 다섯 악장이 하나의 단선율로만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모음곡 1번의 두 번째 미뉴에트, 모음곡 2번의 두 번째 미뉴에트, 모음곡 3번의 두 번째 부레, 모음곡 4번의 두 번째 지그, 그리고 모음곡 5번의 사라반드이다. 모음곡 5번의 두 번째 가보트에서 한 번의 프림-화음(동시에 서로 다른 줄에서 같은 음을 긋는 기법)이 등장하지만 이는 원본 스코르다투라에서만 등장하고 일반적으로 연주되는 버전에서는 이러한 화음이 전혀 없다.
 모음곡들은 파블로 카잘스나 원전악기 연주자 안너 빌스마(Anner Bylsma),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그리고 요요마와 같이 많은 유명 첼리스트들에 의해 연주되고 녹음되었다. 특히, 요요마는 1985년 그의 베스트셀링 앨범 "여섯 개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으로 그래미 어워드 최고의 기악 연주자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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